▶◀ 장영희 교수님 부디 안녕히 가시길~
Posted 2009. 5. 11. 13:00그전부터 이 분의 글을 보고 하다가 기억속에서 잊혀졌는데 무슨 일인가 해서 보니 세상을 뜨셨다는... ㅠㅠ
장애와 사회의 편견을 이기고 교수라는 직업까지 올라 왕성한 활동까지 펼치던 분인데
50대에 암으로 세상을 뜨시다니 안타깝다.
이 분 같이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야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왜 빨리 데려가는지...
속상하다.
부디 저 세상에서도 여기서 가졌던 그 마음 잃지 않고 사시길...
옛날에 이 분 관련 포스트를 네이버 블로그 시절에 올렸었다. 그걸 다시 옮겨보며 이 분과는 작별해야 할듯하다.
2005년 01월 19일 from. 네이버 블로그
"봄이 오면 다시 강단에"
암투병 장영희 교수 6개월만에 복귀
3년 전 완치된 줄 알았던 유방암이 지난해 척추암으로 전이돼 강의를 접어야 했던 장영희(53) 서강대 교수가 6개월 만에 오뚝이처럼 다시 강단에 오른다.
장 교수는 3월 봄학기부터 이 학교 대학원 '19세기 영문학'과 학부 1학년 '영문학 개론'을 맡기로 했다. "담당의사가 항암치료를 예정대로 잘 받으면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무리가 없고, 오히려 활동을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강의를 다시 하기로 했어요."그리운 강단으로 돌아가는 때문인지 투병환자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그는 "요즘은 영시 해설 칼럼을 엮은 책 출판 준비와 영국 여성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시집 번역 작업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면서 "백혈구 수치가 제대로 올라가지 않고 있지만 다행히 통증은 많이 덜해졌어요. 다시 학생들과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네요"라고 즐거워 했다. 지난 연말 장 교수는 논문심사를 위해 자신의 연구실에 들렀다 학생들이 꾸며 놓은 크리스마스트리와 쾌유를 기원하는 카드를 보고 '눈물이 핑 돌 만큼'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저명한 영문학자인 고 장왕록 박사의 딸인 장 교수는 첫돌을 며칠 앞두고 고열을 앓다가 척추성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1급 장애인이 됐다. 하지만 장 교수는 스스로 장애를 장애로 여기지 않았으며 아버지와 함께 펄 벅의 '살아 있는 갈대'를 번역하는 등 영문학자, 칼럼니스트, 교수로 왕성하게 활동해 왔다. 장 교수는 올해도 문학칼럼집, 영미시 모음집 등을 출간할 예정이다.
작년 9월 허리 통증으로 병원에 들렀다가 척추암 진단을 받은 장 교수는 그동안 왕성하게 활동해오던 칼럼리스트 역할을 당분간 접으면서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나를 넘어뜨린다고 믿는다"는 내용의 '마지막 칼럼'을 남겨 많은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조윤정 기자 yjcho@hk.co.kr
오랜만에 장영희 교수님의 소식을 신문을 통해 접했다.
오랫동안 별다른 소식이 없어 궁금증만 더해가던 도중 암투병 중이라는 소식에 너무 놀랐다.
아직도 할일이 정말 많으신 분인데.... 계속된 시련을 헤쳐나가셔야 하다니....
장영희 교수님을 처음 안건 군대시절이었다.
읽을거리가 부족했던 부대에서 가끔씩 날아오는 샘터는 그야말로 가뭄속 단비와 같았다.
다들 소설책이나 무협지를 보는게 대부분이라 내가 원하는 책이 별로 없어 샘터가 오는 그날은 마치 여자친구의 편지를 기다리는 군바리의 심정과도 같았다.
지금은 안그렇지만 그때는 사람사는 냄새가 솔솔 풍기는 샘터가 정말 소중했다.
행정병이었고, 부대로 들어오는 간행물이 다 내 손을 거쳐야 했기에 항상 몇권씩 도착하는 샘터중 1권은 나의 개인 소장품이 되곤 했다. 그 샘터의 앞면을 항상 장식하시던 분이 바로 장영희 교수님이셨다.
힘든 시련만을 겪은, 생각 깊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이야기들....
메말라 있고, 군대가 짜증나 힘들기만 했던 나에게는 이분이 정말 대단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휴가 나와서 몇년전 이분이 내셨다는 '내 생애 단한번' 이라는 수필집도 사서 여러번 읽었고, '나도 이분처럼 좋은 글을 많이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라는 생각도 했다.
군대에서 가진 나쁜 생각, 옳지 못한 행동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성과 지금 군대를 갔다와서도 그나마 군대의 후유증을 덜 받고 사는 것은 군대의 잔재를 전역 후에도 가져가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도 있었지만 장영희 교수님의 칼럼과 같은 좋은 글들을 많이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던중 2004년이 되면서 장영희 교수님이 샘터에서 모습을 감추셨고 전역후 샘터를 정기구독 해보겠다는 소망을 실천하지 못하며 더욱 소식을 알길이 없었고 난 '외국에라도 가셨나.' 하고 소식을 은근히 궁금해 하던 도중 이런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쨌든 암이라는 힘든 병으로 투병하시면서도 다시 강단에 서신다는게 놀라울 따름이다. 성치도 않은 몸으로 교수까지 된다는게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닌데... 이제 좀 편해지려 하니 다시 하늘이 시련을 내리시고.... 안타깝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부디 완쾌하셔서 계속 사람들과 함께 하는 교수님이 되시길 바란다.
점수를 잘 주시는 교수님인지는 모르겠지만, 서강대 학생이라면 이분 수업 한번쯤은 들어봐도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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