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박노자 - 당신들의 대한민국 (5)
Posted 2009. 1. 28. 09:22From. 네이버 블로그 (2005.01.03)
여군동 기자, 책으로 박노자를 만나다
박노자 - 당신들의 대한민국 (5) 역사속의 교훈들 - 상
인터뷰: 네이년 뉴스 여군동 기자(이하 여), 박노자 교수(이하 박)
여: 대망의 2005년이 밝았습니다. 이야기 나누기 전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박: 예, 기자님도 한해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제가 한국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느꼈던 교훈들을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질지도 모르니 오늘 다 못하게 되면 다음 이시간까지 두번에 나눠서 해볼려 합니다.
여: 그럼 하나씩 이야기를 해 주시겠습니까?
박: 먼저 한국사회를 이야기할때 빼놓을 수 없는 혈통과 국적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흔히 한국 사람들은 '우리가 단일민족' 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죠. 하지만 엄연히 따지면 한국의 역사는 단일민족의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엄연히 고구려나 발해와 같은 국가는 다민족 국가였지요. 고려도 고구려나 발해만큼은 못했지만 상당히 개방적인 태도를 가진 국가였습니다. 또한 이런 개방적인 성격의 다민족 국가들이 단일민족 내지는 폐쇄적 성격을 가진 국가들보다 훨씬 자주적이고 선진적임이 여러 사례를 통해 밝혀졌죠. '역사 스페셜' TV 프로그램 몇번만 보셨다면 충분히 아실 수 있겠죠?
여: 아, 저도 그 프로를 몇번 봤습니다만, 고구려나 발해 이야기를 보면 교과서에서는 전혀 알 수 없었던 내용들이 많더군요. 잘못 알고 있는 것도 많구요.
박: 그렇습니다. 먼저 고구려의 경우를 보면 다종족적이며 다문화적 포용을 통해 강한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말갈, 예맥, 옥저와 같은 인접 민족들의 문화를 인정하면서 간접 지배를 했고, 중국 귀화인들을 우대 및 중용했죠. 특히 미천왕에 의한 낙랑군의 멸망은 상당수의 중국인들을 고구려가 흡수했으며 불교와 도교가 공존함을 나타내준 사례입니다. 고구려는 중국의 절반을 지배한 군사대국이라는 식의 논리는 파쇼적 군사주의나 재벌의 아시아시장 공략의 합리화를 위해 조작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는 지배층인 고구려인과 일반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말갈인들이 정치적, 문화적으로 잘 융합되며 해동성국을 이뤘었죠. 그 융합이 잘 이뤄졌을때 발해는 강국이었지만 후대에 이르러 고구려인과 말갈인의 갈등이 심해지며 거란에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고구려나 발해가 엄청난 전성기를 이룬 반면, 신라가 통일 후에도 고구려나 발해만큼 크지 못했던 것은 그 폐쇄적 성격에도 원인이 있습니다. 신라는 바로 골품제라는 폐쇄적 제도가 가깝게는 고구려나 백제 출신, 멀게는 외국인들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자연스럽게 낳으면서 사회통합에 실패했고 후대에 많은 호족들과 후삼국이 등장하는 원인을 제공했죠. 반면 신라에 멸망하긴 했지만 백제의 경우 한강유역을 차지했던 전성기에 중국과 일본에 대대적인 문화를 전수했었지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백제가 중국인과 왜인을 관료로 기용하면서 나라의 발전을 도모했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인데 교과서에는 그런게 언급되어 있지 않지요?
고려와 조선을 비교해봐도 고려는 귀화인을 우대해 귀화인 쌍기가 제안한 과거제도나 오히려 중국에서 쇠퇴했던 천태종을 융성시켜 다시 중국으로 전파시킨 등 개방적인 국가운영이 그들을 문화대국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죠. 반면 조선은 외래인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바람에 당시 세계 최고의 선진국 사람이었던 하멜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등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며 이후 외세의 침략에 무참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 그렇군요. 사실 한국 역사의 많은 부분이 한국인만의 역량인 듯 묘사되었고,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아니라는걸 확실히 알 수 있었군요. 이런 우리의 폐쇄적인 태도가 현재 우리사회를 이끄는데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죠?
박: 지난번에도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만 중국, 구소련 동포가 오랫동안 그곳에서 각고의 노력끝에 이뤄온 독자적이고 탄력성 있는 문화 같은것을 무시하고 그들을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만 파악하며 은근히 무관심한 것이나 한국에서 고생하고 있는 아시아 각국의 노동자들에 대한 무관심 등은 이런 잘못된 역사교육을 받아온 소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 보여줬던 외국문화에 대한 포용을 통해 독립적이면서도 국제적인 문화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 다음은 일제식 환상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이야기를 해 주시겠다요?
박: 예, 우리 사회에 알게 모르게 아직도 일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광복후 역사의 과오를 완전히 청산하지도 못했고 오히려 그런 일제의 잔재를 독재자들이 통치의 이념으로 악용해 왔기 때문이죠. 미 군정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역대 정권들은 일제가 식민지 통치를 하면서 남긴 '풍부한 경험' 을 이용했습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과두정치에 근거한 '계몽독재', 공업과 군사력 우선의 발전, 침략전쟁을 벌였고 이후 6.25 특수를 통해 경제대국으로의 기틀을 다졌죠. 이와 유사하게 박정희 시대에는 영남 출신 군인들의 '개발독재', 재벌 중심의 경제체제, 반공의 논리,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의한 특수까지.... 매우 유사하지 않습니까?
특히 메이지 시대에는 '문명개화' 를 위해 평민이 희생해야 한다는 관존민비의 사고가 팽배해 있었고 이는 현 정권에도 남아있습니다. 공무원의 관존민비 의식이나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합격자를 지나치게 떠받드는 분위기나 그들을 '아랫것' 으로 보며 봉사정신을 잃은 공무원의 모습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 '문명개화' 라는 것을 통해 일본의 평민들과 주변 민족이 각각 2등 신민과 신판노예로 전락했듯이 지금도 이런 것이 계속되며 중산층과 중하류의 상당수가 새로운 하층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분명 우려할 부분입니다.
또한 한가지 덧붙인다면 러일전쟁때 일본이 러시아 포로들을 선진국의 군인이라는 이유로 신사적으로 대했지만, 조선독립운동을 하다 생포된 의병들은 대량으로 학살했었는데요. 이 역시 현재 선진국의 백인들에게는 친절하지만 후진국 사람들에게는 폭력적인 한국의 현실과 일맥상통합니다. 정말 이런 많은 일제잔재들을 타파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여: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두가지 이야기만 해도 많은 시간이 지났군요. 나머지 이야기들은 다음에 듣도록 하겠습니다.
박: 예, 다음에 못다한 이야기를 계속 해드리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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