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박노자 - 당신들의 대한민국 (10)
Posted 2009. 2. 4. 23:29From. 네이버 블로그 (2005.01.30)
여군동 기자, 책으로 박노자를 만나다
박노자 - 당신들의 대한민국 (9) 한국 민족주의의 진면목, 국가주의
인터뷰: 네이년 뉴스 여군동 기자(이하 여), 박노자 교수(이하 박)
여: 지난번에 민족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요. 민족주의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었지만 한국적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좀 있는 것 같아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면 수구세력의 북한에 대한 적개심이라던지, 중국 및 구소련 지역 동포에 대한 차별대우 같은 것은 민족주의의 관점에서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인데 그런 것들이 현실속에서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교수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계십니까?
박: 오늘 드릴 말씀이 그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한국도 민족주의를 이데올로기로 하여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를 좀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계급적이면서도 극우적인 배타주의가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1990년대 초반으로 한번 돌아가볼까요? 당시 한국의 지배층은 박정희식의 '근대화' 나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이어지는 점차적 민주화(?)의 완전한 성공, 서울올림픽등으로 절정에 달한 한국경제의 양적 성장, 소련의 몰락과 북한의 위기를 체제 경쟁에서의 승리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다가 그나마 사회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던 운동권의 약화를 고무적으로 보는 모습은 과연 한국의 민족주의의 본질이 어떤 것인가를 한번쯤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이었습니다.
타 민족에 대한 우수성보다는 북한이나 운동권 같은 민족내의 이질적 부분에 대한 승리를 중시하는 이러한 흐름은 민족주의를 넘어서 계급적이면서도 극우적인 배타주의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여: 계급적이면서도 극우적인 배타주의라, 민족주의의 폐단보다 더 무서운 것인듯 한데요. 민족주의적 관점도 보는 시각이 상당히 좁은데 이는 그것을 더욱 좁히는 것 아닙니까?
박: 그렇죠. 이런 것 말고도 한국의 배타주의적 성향을 보여주는 부분이 아까 여 기자님도 언급하신 중국 및 구소련 지역의 동포에 대한 차별대우입니다. 한국의 재외동포법은 혈통주의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재외동포법을 제정하면서 재외동포의 자격을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에 외국으로 이주한 사람' 으로 제한했기 때문이죠. 얼핏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이는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먼저 재외동포법이나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인들에 대해 한국은 철저한 속인주의 및 혈통주의를 적용하고 있는데요. 이는 혈통과 무관하게 사회구성원을 시민으로 간주하는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국가가 채택한 속지주의를 단일민족에 대한 허상, 민족주의에 물든 배타적 관점이 겹치며 수용할 수가 없었기에 대가족 논리에 부합하는 속인주의 및 혈통주의를 채택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이 혈통주의도 민족주의적인 열광이 아니라, 잘 살고 있는 한국으로 못사는 중국이나 구소련 동포들이 몰려들면 우리의 밥그릇을 빼앗을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의해 변형된 형태로 나타났고, 그래서 재외동포의 개념도 한국 사회 및 경제에 기여할 가능성에 따라 '1948년 이후' 라는 단서를 달아 차별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 사실 누가 강요하거나 선동한 것은 아닌데, 저도 옛날에 중국이나 소련에서 온 동포들을 보면 왠지 모를 거부감을 갖곤 했었죠. 알게 모르게 이런 배타적인 감정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알고서 잘못을 저지르는 일보다 이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스며들어 그것에 대한 아무런 판단 없이 행동을 하게 되는게 더 무서운 일인 듯 합니다.
박: 그렇습니다. 또한 한국의 자기 중심적 민족주의는 타인종과 타민족에 대한 적극적이면서도 간혹 폭력적이기까지 한 배제와 폄하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이나 유럽의 자기 중심적 민족주의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 동포의 배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귀화한 외국인마저 질시하는 풍토들을 보아도 알 수가 있지요.
여: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입니까? 배타적이라는 근본적인 부분은 같은데 말입니다.
박: 하나의 예를 들어보지요. 몇년전인가 지방자치단체 도의원 한명이 주한미군을 상대로 윤락녀를 제공하는 브로커일을 하다 경찰에 적발된 적이 있었지요. 그때 이 도의원께서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내가 아가씨들을 공급해 주는 것은 '우방의 병사' 인 미군에게 다양한 성적 욕망을 해소할 기회를 주고 한국인 포주에게 더 나은 외화벌이 기회를 제공하며 나아가 미군의 성범죄를 줄이기 위한 애국심의 발로였다고요.
그 말을 신문에서 보고 마음이 참 씁쓸했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모두가 하나가 되어 나가야 할 이 마당에 가난한 이웃을 도구로 하여 우방인 미국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적인 외교' 로 인터걸 사업을 미화하려 했으니까요. 기존의 민족주의적인 관점에 이 순수하면서도 냉혹하기까지 한 자본주의의 논리가 교묘하게 결합된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런 예를 보아도 한국의 민족주의는 민족 내부에서도 서로를 나누는 지극히 배타적인 측면을 갖고 있고 이는 민족보다는 '대한민국' 이라는 국가를 자본주의적으로 지키기 위한, 자본주의적 국가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가 있을 듯 합니다. 한국은 민족주의가 아닌 국가주의가 지배하는 국가라 칭하는게 더 맞는 말일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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