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박노자 - 당신들의 대한민국 (9)
Posted 2009. 2. 3. 22:47여군동 기자, 책으로 박노자를 만나다
박노자 - 당신들의 대한민국 (8) 민족주의에 대한 몇가지 생각
인터뷰: 네이년 뉴스 여군동 기자(이하 여), 박노자 교수(이하 박)
박: 요즘 민족주의란 말, 그리고 그것에 대한 논란에 대해 많이 들어보셨겠지요?
여: 그렇습니다. 그전에는 잘 몰랐는데 아무래도 시민운동이 활성화되고 개혁세력이 정권을 잡고 하다보니 전에는 언급되지 않았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 많이 보이는 것 같더군요.
박: 사실 그동안 한국인들은 민족주의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아왔던 것 같은데요. 이는 옛날부터 내려온 사상도 아니고, 우리가 바로 나가야 할 길도 아니거든요. 이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알고 우리가 나가야 할 길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 저도 여기저기서 책을 읽고 하다보니 민족주의라는 것에 대해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좀더 정리된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박: 그럴까요? 먼저 민족주의의 본질을 한번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원래 민족주의는 근현대적인 현상으로서 위에서부터 교육제도와 매체를 통해 주입되고 강요된 개념입니다. 또한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역사를 우리와 그들의 싸움, 국가와 민족의 성장이라는 단세포적 잣대로 포장하며 역사와 사회를 왜곡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민족주의의 역사는 우리와 그들을 철저히 분리하고, 여기에서 우리는 무조건 선하고 그들은 무조건 악하다는 식의 탈도덕적이고 이분법적인 논리를 동원하게 됩니다.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인 감정을 갖거나 그들을 경계하는 태도는 다 여기서 유래된 것이지요.
한국 역사속에서 윤관의 여진정벌이라던가 고려 태조때 있었던 만부교 사건은 자주적인 영토확장의 의지나 자주외교의 성과라는 식으로 포장됐지만 고려를 유린했던 몽고세력이나 홍건적, 왜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자신의 보금자리를 파괴당했던 여진족이 고려를 바라보는 모습과 무엇이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또한 미물이라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불교정신을 누구보다 숭상했던 고려가 그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 것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구요.
여: 역사를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우리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다보니 생길 수밖에 없는 오류겠군요, 좀더 시각을 넓혀보니 이런 일들이 크게 자랑할 일은 못되는거 같은데요?
박: 그렇습니다. 민족주의는 양심으로부터 해방되어 버린 민족주의는 범죄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폭력과 억압을 은근히 정당화 하는 민족주의의 본질을 아는 일은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여: 아, 그리고 제가 언젠가 들은 말인데, '우리' 라는 말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것이 민족주의 탈피 및 보편주의적 관점을 확립하는 하나의 길이 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교수님도 그 의견에 동의하시나요?
박: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민족주의는 '우리' 를 언어를 비롯한 각종 상징적인 수단으로 생산해내는 일종의 상징기제니까요. 한계없는 자유인으로 태어난 한 인간의 자아의식과 사유의 범위를 좁은 영역에 국한시키고 끼리끼리 문화를 만드는 주범이니까요. 우리를 민족주의 안에 가두는 '우리' 는 여 기자님이 언급하신 쓰지 말아야 할 단어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 를 배제하고 현재를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반발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의 설정은 지극히 자의적인 것이니까요.
모든 것이 서로 복잡하게 얽힌 복잡다단한 세상에서는 '우리' 도 '남' 도 따로 존재할 수 없이 서로 깊은 연관을 맺게 마련인데 여기서 잘 변하지 않는 집단적 요소를 모아 '우리' 와 민족주의가 탄생되었고, 이데올로기 도구로 이를 편하게 이용하게 된 것이지요.
여: 그럼 이런 민족주의의 형성에 원류가 될 수 있는 '민족' 의 탄생이나 구분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나요? 특히 역사에 손을 대서 이런 작업을 하리라 생각되는데요.
박: 한국을 비롯한 많은 민족주의 국가들에서 민족을 만들기 위해서 '국사 만들기' 가 선행되었죠. 우리 민족은 오랜 과거부터 존재해야 하며 현재까지 단선적 정통이 이뤄져야 하므로 민족주의 사학은 이를 끼워맞추기에 급급했습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죠. 먼저 터키의 경우는 자신들의 원류를 기원전 2000년경의 히타이트족이라 주장하는데요. 이들은 현재의 터키족과 완전히 다릅니다. 그냥 터키땅에 그들이 머물러 있었다는 것 이외에 그들과의 공통점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요즘 시끄러운 이라크도 역사의 시작은 바빌론이라 주장하는데요. 바빌론 사람들은 아랍어를 쓰지도 않았고 이슬람교를 믿지도 않았거든요? 이런 면에서 그들의 조상을 바빌론 사람들이라 하는 것은 억지나 다름 없습니다.
시선을 중국과 한국으로 옮겨 볼까요? 중국의 경우는 기원전 1700년경의 은상문화, 심지어 50만년전에 발견된 원인들까지도 자신의 조상으로 간주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전국 시대의 초, 진, 제나라는 모두 언어와 문화가 상당히 다른 종족이었다는건 중국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죠.
한국도 고조선이 역사의 시작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고조선에 대한 자료는 주로 고조선 멸망후에 쓰여진 중국의 사서등을 통해 얻은 것이기 때문이죠. 또한 삼국시대에는 고조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에 고조선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엄연히 말하면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여: 그것말고도 단일민족과 같은 문제를 생각해 보면, 분명히 고구려나 고려 시대에 상당히 우리가 많은 외국인들과 교류를 했고, 그들과 피가 섞였기에 단일민족이라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분명 있는데 이를 계속 고집하지 않습니까? 단일민족에 대한 부분도 민족의 순수한 혈통을 강조하는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외부와의 교류를 심리적으로 거부하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군요.
박: 그렇습니다. 혼혈아에 대한 나쁜 인식 같은 것이 단일민족의 허상속에 숨겨진 이 사회의 아픈 부분이지요. 이것 말고도 민족주의의 발현을 위해 국가는 다양하고 국지적인 언어문화의 희생을 통한 하나의 동질적 민족언어의 탄생, 국토 만들기 등의 수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한때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맞서 나왔던 '만주는 우리 땅, 만주를 되찾자' 는 운동이라던지, 러시아가 국가 분열을 막기 위해 체첸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을 감행, 그들을 자신의 범주 안에 집어넣으려 하는 것들이 대표적인 사례겠지요. 아직도 알게 모르게 우리는 민족주의 논리에 정형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쉽게 물들지 않고 좀더 그 이면을 생각하며 올바른 길을 찾는 일이 지금 이 사회를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로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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