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김현철 1집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고 오늘은 2집을 뛰어넘어 3집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할까 한다.
2집은 본격적으로 들어본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까지 뭐랄까... 감상평을 쓸만큼 와닿지 않는다. 당분간 계속 틈틈이 들어서 소재를 찾아야 할듯 하다.

김현철의 정규앨범 중 내가 가장 많이 듣고 접한 앨범이자 김현철이라는 가수를 알게 된 계기가 된 3집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1집 이야기를 할때도 잠깐 언급했지만 난 3집 이전까지만 해도 김현철이라는 가수를 잘 몰랐다. 그 당시는 신승훈과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를 양분하고 있었다. 윤상은 2집까지만 발매하고 가수는 그만한다는 선언을 했었고... 아직 전람회나 토이, 더 클래식 같은 가수들은 나오기 전이었으니까...

별밤의 영향으로 이문세에 빠져들 무렵, 우연히 라디오에서 새 앨범을 냈다는 김현철이라는 가수를 알게 됐고, 그가 타이틀곡으로 내놓은 달의 몰락에 꽂혔다. 곧바로 동네 음반가게에서 그의 테이프를 구매했다. 그 테이프는 아직도 내 방에 고이 모셔져 있다. CD는 지난달에 중고 카페를 통해 미개봉 CD를 구했다.

김현철의 3집 앨범은 순수함과 감성이 많이 묻어나 있는 1,2집과 이후 상업적이고 표피적인 측면에만 치중해 본래의 색깔을 잃어버렸다는 4집 이후의 앨범들과의 경계선상에 있는 음반으로, 김현철이 보여준 2가지 음악 스타일을 교묘하게 모두 맛볼 수 있는 그런 앨범이다.

여전히 중의적이고 감성적이며 심금을 울리는 가사와 신디사이저에 기반한 약간은 촌스러운 듯한 음악은 1,2집의 모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초기 음반에 비해 늘어난 세션맨들의 비중, 그로 인해 훨씬 세련됐다고 평가되는 편곡등은 이후의 음악과 많이 맞닿아 있다.

3집 앨범 이후 방송 출연보다는 공연과 음반으로 활동하던 가수가 아닌, DJ와 각종 음반 제작, 영화OST 참여등으로 활동적인 모습을 보인 김현철은 이후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데는 성공했지만 골수팬들의 마음은 잃은 '아쉬운 뮤지션' 이 되고 만다.

Track 1 횡계에서 돌아오는 저녁 (5:40) (김현철 작사/작곡/편곡)

그 전에는 가요 음반에 연주곡이 있는 것을 많이 보지 못했다. 있어봤자 경음악 정도였다.
테이프를 처음 틀자마자 시작되는 경쾌한 선율... '달의 몰락' 이 듣고 싶었지만 몇십초만에 이 연주곡에 빠져 '달의 몰락' 을 꼭 들어야 겠다는 생각은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5분여의 연주곡은 초반 손진태의 기타 솔로를 중심으로 전개되다 김현철의 스캣 보컬과 함께 김광민의 건반 솔로가 이어진다. 초등학교때부터 약 6년간 피아노를 배워온 나에게 김광민의 건반 솔로 부분은 전율 그 자체였다. 지금도 기회가 되면 건반 연주자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건 이 곡의 영향이 크다.

정확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김현철이 횡계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차가 너무 밀렸고, 그 상황속에서 이 음악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설(說)과는 다르게 음악은 경쾌하고 물 흐르듯 흘러간다. 달리는 차 안에서 드라이브 음악으로는 손색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사람을 옆에 둔채 밤길 고속도로를 달리며 들으면 딱 좋은 곡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후 음반에서도 김현철이 수준급의 연주곡들을 내놓았지만, 그래도 난 이 곡을 김현철의 연주곡 중 Best로 꼽고 싶다.

Drums 김민기, Bass 조동익, Guitar Solo 손진태, Percussion 박영용, Keyboards, Steel Drum Solo 정원영
Keyboards, Elec Piano Solo, Synth Solo 김광민, Keyboards, Guitar Melody, Scat Vocal 김현철



Track 2 우리 언제까지나 (Feat. 이은미) (4:12) (김현철 작사/작곡/편곡)

지금은 맨발의 디바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이은미지만 이때만 해도 아직까진 평범한 발라드 가수였다.
'기억 속으로' 라는 노래가 드라마에 삽입됐었는데... 그걸 통해서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렸던 이은미...
이문세쇼였나...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그때 이은미가 긴 생머리를 하고 수줍게 진행자의 농담에 어쩔줄을 몰라하며 해맑게 눈웃음을 지을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뭔가 무시못할 포스를 풍기는데다 머리까지 폭탄머리(?)를 하고 계신...;;

2집부터 듀엣곡(조규찬과 함께한 나나나)을 하나씩 넣기 시작한 김현철은 4집에서는 솔리드, 5집에서는 임상아, 6집에서는 여행스케치, 7집에서는 윤사라와 호흡을 맞추며 곡을 하나씩 발표했다. 혹자들은 이 듀엣곡들이 상업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왜 듀엣곡을 넣는 것이 상업적인지 잘 모르겠다.

뭐 특별한 것은 없고 우리 너무 사랑한다, 눈뜰때 잠들때도 생각한다, 아무 간섭없이 영원히 사랑하자는 전형적인 노래다.

Drums 김민기, Fretless Bass 조동익, Guitar 손진태, Piano 정원영, Keyboards, Percussions 김현철


Track 3 달의 몰락 (4:11) (김현철 작사/작곡/편곡)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김현철의 3집 타이틀곡이다.
무슨 상황을 얘기하는 것 같긴 한데 작사자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과 그저 스쳐 지나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노래의 를 시작점을 발견하는 것이 김현철 음악의 매력인데 1집에 '오랜만에' 가 그렇다면 3집에서는 '달의 몰락' 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녀가 김현철에게 얘기한 '달' 은 진짜 달인지, 아니면 김현철의 구애를 받아내야 할때마다 그를 피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는지, 아니면 그녀의 김현철에 대한 사랑을 대신 표현한 것인지... 다양한 추측이 가능하다. 그리고 김현철은 지는 달을 보면서 헤어진 그녀를 같이 잊기로 한다. 헤어짐의 아쉬움을 저물어가는 달에 이입시킨 것... 나름 시인의 포스를 가사에서 보여주고 있다는;;

'달이 진다... 달이진다...' 는 한숨섞인듯한 인트로와 중반에 1-2초 정도의 침묵 (마치 음악이 끝난것 같아 라디오PD들이 많이 낚이셨다는 에피소드가),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나도... 그녀를... 잊을 수 있다' 는 당시 나온 다른 곡들의 편곡과 다르게 파격적이고 세련됨을 보여준다.

All Instrumental 김현철, Sax 이정석, Guitar Solo 손진태, Backgroud Vocal 박승화, 김현철


Track 4 음악은 (Feat. 유정연) (3:53) (김현철, 유정연 작사/작곡/편곡)

2번 트랙에 이은 김현철의 또다른 듀엣곡이다.
김광석의 '나의 노래' 처럼 그동안 자신의 인생에서 음악이 얼마나 비중을 차지하고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해왔는지를 들려주는 노래다.
음악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이런 노래를 만들고 싶을게다.

Drums 김민기, Bass 조동익, Guitar 손진태, Percussion 박영용, Piano, Organ 김광민, Keyboards 김현철


Track 5 언제나 그댈 (4:18) (김현철 작사/작곡/편곡)

키보드의 맑은 음색, 마음속을 후벼파는 색스폰 소리, 기교없이 감정이 차오르는대로 질러내는 김현철의 보컬이 어우러져 애절함을 던져주는 노래다. 개인적으로는 '달의 몰락' 보단 이 노래를 더 좋아한다.

떠나버린 연인, 끝나버린 사랑을 이제 추억으로 남기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리지만 너무도 아쉽고 그 추억이 소중하기 잊을 수 없어 언제나 그댈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김현철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Drum Programming, Bass, Keyboards 김현철,
Auditional Keyboard 정원영, Sax Solo 이정식, Background Vocal 박승화 ,김현철



Track 6 오늘 이 밤이 (3:53) (김현철 작사/작곡/편곡)

도시라는 공간이 감성과는 참 거리가 멀다. 도시에서 낭만과 감성을 찾기란 보통 일이 아닌듯 한데 이를 모티브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도시의 밤을 잘 녹여낸 노래다.

'휘황한 달빛 아래 그 꾸밈없는 웃음 꺼질듯이 피어나는 이밤' 이라는 가사가 제일 와닿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칠흙같은 이 밤도 밝게 태양이 빛나는 낮보다 아름답지 않겠는가.

다양한 악기들을 사용한 세련된 재즈 편곡 또한 우수하다. 개인적으로는 곡 중간의 김광민 아저씨가 연주한 비브라폰 솔로 연주에 꽂혔다. 초등학교때 했던 실로폰과는 차원이 다른 맑은 소리~ 고운 소리~

Drum Programming, Bass, Keyboards 김현철, Guirar Guitar Solo 손진태, Percussion 박영용,
Keyboards, Synth Solo 정원영, Synth-V/Braphone Solo 김광민, Cymbal Dubbing 전태관,
Background Vocal 박승화 ,김현철



Track 7 결혼 X (이른나이 - 늦은나이) = 힘든나이 (4:09) (김현철 작사/작곡/편곡)

이 노래를 만들었을때 김현철이 스물여섯이었을게다.

연상의 여인이라도 사귄 것일까. 자긴 결혼하기 이른 나이고 그녀는 결혼하기 늦은 나이라며 둘이 함께 하는 것 말고도 복잡한 이유가 있다는 결혼의 속성을 투덜거리듯 표현해 낸다.

결국 결론은 결혼하기 너무나 힘든 사이 아니었을까... 매우 현실적인 노래라고 생각한다.

다른 곡들과는 달리 '낯선 사람들' 이라는 그룹의 리더로도 유명한 고찬용의 멋드러진 백보컬이 일품이다.

Drums 김민기, Bass, Guitar, Keyboards, Synth Solo 김현철, Background Vocal 고찬용


Track 8 진눈깨비 (4:59) (조동진 작사/작곡/편곡)

1986년에 발표된 조동진의 노래를 김현철이 리메이크 했다.
조동진의 원곡이 좀 오래된거라 어디서 들어볼 수가 없다.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하늘에서 내리는 진눈깨비, 그 진눈깨비에 흔들려 초점없이 흘러가는 도시의 불빛, 그리고 외로운 마음...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의 절정을 잘 표현한 노래가 아닐지. 정말 듣기만 해도 마음이 싸해지는 뭔가가 있는 노래다.

All Instrumental 김현철


Track 9 만남 - Blue & Purple (3:44) (김현철 작사/작곡/편곡)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CD를 사면 CD에만 들어가는 보너스 트랙이 있곤 했다.
테이프에는 위에서 소개한 8곡만이 담겨 있다. CD에는 9번 트랙과 2,3번 트랙의 경음악까지 총 11개의 트랙이 담겨 있다.
별다른 정보도 없고 그냥 노래 제목만이 나와있는데 CD 보너스 트랙으로 듣고 넘어가기에는 아까울만큼 잘 만든 연주곡이다.
이 음악처럼 멋드러지게 색소폰 연주 한번 해볼 수 있다면 정말 소원이 없겠다...


김현철 CD의 뒷면이다. 이제는 추억속의 이름이 된 '동아기획' 의 이름이 보인다.
사진기가 접사가 안되는 똑딱이라 잘 보이지 않지만 하단에 보면 추억의 심의번호도 있다.
당시 가요들은 모두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음반을 낼 수가 있었다.
그야말로 '그땐 그랬지' 다.


CD 속지의 마지막장에 보이는 김현철의 앳되고 마른 모습... 지금은 너무 후덕해 지셨다 -_-

사진 옆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져 있다.

'이 Album을 3년 반 동안, 나를 지탱케 해 준, 그리고 모든 가사의 주인공이 되 준, ToTo어멈에게 남기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이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다. 그냥 추측상 김현철과 사귀었던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녀는 김현철보다 연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뭐 그정도?

이처럼 한 사람과의 사랑의 시작, 끝을 모두 농축해 담은 컨셉은 이후 '연애' 가 수록된 7집에서 다시한번 나타나게 된다.

사랑의 스토리에 맞춰서 음악 듣는 순서를 다시 정리해 본다면...
1번 -> 6번 -> 2번 -> 7번 ->3번 -> 5번 -> 8번으로 들어야 하나의 스토리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김현철의 또 다른 앨범을 다시한번 돌아보았다.
그에게 있어서는 뮤지션으로 장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 앨범, 대중적으로 한발 다가서는 계기를 만든 앨범이다.
동아기획의 딱지를 달고 나온 앨범은 이 앨범이 마지막이고 이후 김현철은 대형 음반사들과 계약을 맺고 독자 행보를 걸으며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

« PREV : 1 : 2 : 3 : 4 : 5 : 6 : ··· : 125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