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 당신들의 대한민국 (3) 한국의 종교와 패거리문화

인터뷰: 네이년 뉴스 여군동 기자(이하 여), 박노자 교수(이하 박)

여: 교수님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바쁘셨는지요? 수능이라도 보셨습니까?

박: 재미없군요....

여: 아, 거 그게... ㅡ.ㅡ 어쨌든 오늘은 어떤 이야기로 시간을 이끌어 주시겠습니까?

박: 오늘은 한국에 와서 느낀 종교와 패거리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해볼까 합니다.

여: 하긴 한국이 워낙 집단을 중시하는 사회인지라 뭐 집단의 힘은 이전부터 모두 느껴보았을 것이고, 최근 들어서면서 다종교 사회가 되다보니 종교에 의한 영향력도 상당하긴 하지요. 선생님께서는 구 소련 출신이셨을테니 한국에 와서야 종교를 경험해 보셨을 것 같은데요.

박: 그런 셈이죠.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기독교 모임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좀 이상한 느낌을 받았고, 그로 인해 종교에 의해 저는 안좋은 추억을 갖고야 말았지요.

여: 아, 어떤 안좋은 추억들이...?

박: 모든 종교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요. 제가 나갔던 기독교 모임은 철저한 출석관리나 회원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교라는 것이 한창 신앙심에 빠지다보면 열성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는 것이고, 살다가 생각이 바뀌게 되면 종교를 바꾸거나 그 종교에 대해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한국의 일부 종교단체는 그런 것을 인정하지 않더군요. 회합이 있을때마다 누가 나왔는지 꼼꼼히 체크하고, 만일 그가 장기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전화, 대면, 심지어 집에까지 찾아가 종교행사에 참석하라는 '스토킹' 수준의 행동들.... 정말 말문이 막히더군요.

그리고 기독교 모임에서 기도를 하는데, 꼭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리내어 내가 기도하고자 하는 바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도 탐탁치 않았습니다. 종교란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 아닙니까? 기도는 남이 보이지 않는 곳에 가서 몰래 하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 성격을 무시한채 간단한 기도마저 모두가 한꺼번에 공개적으로 해야한다는 것, 역시 저에게는 의문 투성이였습니다.

세번째로 제가 느낀 것은 바로 비종교인에 대한 멸시와 배타적 태도입니다. 수많은 종교가 있고, 그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개인이 인격을 갖추는 보조수단으로 종교가 기능해야 하는데, 일부 사람들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지옥에 갈 것이다, 아니 지옥에 가야한다는 식의 발언으로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렇게 상대방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채 자기만의 논리로 종교행위를 하는 모습,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종교갈등이나 나아가 한국사회에서의 집단 갈등의 원인이 될수도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군요.

여: 참으로 문제가 많은 부분입니다. 그런 것에 거부감을 느껴 종교에 귀의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람들도 많지요. 너무 종교적 논리에 빠져 일상생활에서 자신이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도 있구요.

박: 제가 또 놀란 것은 이런 일부 종교인들의 배타적 태도 말고도 종교패거리주의가 팽배한 사회현실이었습니다. 종교재단에 의해 세워진 사학의 경우, 교직원을 채용할 때 특정 종교를 가진 자만을 받아들이려고 하고, 또 직원들에게 강제로 종교행사 참여를 시키며 출석여부까지 체크해 인사고과에 반영하더군요. 그게 말이나 되는 겁니까? 이 역시 신앙의 개인적 성격이나 타 신앙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의 결여를 보여주는 사례지요.

여: 최근의 강의석군 사건도 그렇고, 특히 종교재단에 의해 설립된 사학들에 의한 반강제적인 종교활동은 오랫동안 문제가 되어 왔지요. 고등학교나 대학교나 어떤 학생의 의지가 아닌 추첨이나 입시점수에 의해 선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그런 것일수도 있겠고, 그만큼 너무 자신의 논리만을 강조하는 사학들의 잘못된 생각도 원인일 것 같습니다.

박: 물론입니다. 또 한가지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제가 러시아에 있을때부터 동양쪽 학문을 공부하다보니 불교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실제로 소련 공산주의 정권의 부패와 폭력에 환멸을 느낀 많은 소련 대학생들이 불교에 귀의하곤 했었는데요. 근데 학교에서 배웠던 불교의 이상과는 다르게 한국에 와서 느낀 불교의 현실은 매우 안타깝기 그지 없었습니다. 먼저 살생을 거부해야하는 승려들이 군대에 갔다온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또한 승려사회에서도 승려에 대한 징집이 양심적 병역거부의 사유가 된다는 인식조차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비폭력과 무욕을 사랑해야 할 승려들은 무비판적으로 군대에 끌려가 그들이 배웠던 부조리를 절에서 그대로 재현하게 된다고 합니다. 최근 들어 한국 불교계에 수준높은 신앙을 전수받을 수 있는 '큰스님' 의 재목이 없다는 탄식이 쏟아지는데요. 아마 징집제도 그런 것에 한몫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불교를 이야기할때 '호국불교' 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과거 사명대사가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고, 고려시대에는 나라의 평화와 안녕을 기리는 차원에서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기도 했었지요. 그런 면에서 불교는 충분히 호국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호국불교는 악마적인 국가나 파시즘의 폭력에 영합하려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폭력적인 정권에 맞서 정의를 지키려는 불교의 모습이 아닌, 은연중에 호국을 주장하며 그들의 폭력적 논리를 정당화 해주는 모습... 뭔가 앞뒤가 안맞다는 얘기밖에는 더이상 할말이 없군요.

여: 종교와 패거리문화 하니 우리 사회에 아직도 만연한 지역주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한국사회의 지역주의 정치문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박: 물론 어느 나라던지 정치인에게 이른바 지역적 기반은 존재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좀 이상할 정도로 그런 요소가 강합니다. 주로 지역주의를 활용하는 집단은 유신 본당이라던가 5공 잔당을 핵심으로 하는 이들이죠. 최근 사회분위기가 바뀌면서 중세적 통치방식으로 일관했던 이들이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듯하지만, 알게 모르게 지금의 현실에 대해 비난하고 있고, 다시 자신들이 활개쳤던 그런 시절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렇듯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과거의 습성과 관성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선거때마다 자신들의 주 메뉴였던 지역주의를 강조하게 되는 것이지요.

또한, 지적이고 도덕적인 면에서 우위를 보여 정치판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영합하거나 줄을 잘 서서 들어온 이들은 무능력과 무식함이 그 특징입니다. 세상이 점점 정보화 되고 전문화되면서 이들보다 훨씬 능력있는 자들이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들에게 있어 큰 위기이자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이지요. 그렇다고 그들과 지식적인 측면으로 정면대결을 펼친다면 100% 패배할게 뻔합니다. 그리하여 남은 한가지 무기이자 강력한 힘을 가진 지역주의를 최대한 활용하려 하는 것이지요. 이런 지역주의 측면은 '돈' 의 힘이 점점 커지고 있는 정치판에서 지역유지의 정치자금을 이끌어내려는 용도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 한민족이니 뭐니 하지만 한국 사회가 알게 모르게 참 여러갈래로 찢어져 있음을 선생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게 되었군요. 이런 패거리문화가 사회 내부적인 갈등을 조장하고 통합의 어려움을 막는 점도 있겠지만, 글로벌 시대에 외부에 대해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를 갖는데도 걸림돌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해 봅니다. 현재의 상황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펼쳐야 할 것도 같구요.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