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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01 [북리뷰] 박노자 - 당신들의 대한민국 (7) 2


From. 네이버 블로그 (2005.01.10)

여군동 기자, 책으로 박노자를 만나다

박노자 - 당신들의 대한민국 (6) '진보' 꺼풀속에 숨은 전근대성

인터뷰: 네이년 뉴스 여군동 기자(이하 여), 박노자 교수(이하 박)

여: 교수님,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런지요?

박: 오늘은 '진보' 라는 포장아래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전근대성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곳이라 일컫는 대학을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군요.

여: 한국 사회의 진보를 이끈 대학에 전근대성이 담겨져 있는 곳이라구요? 어떤 면에서 그런 것인지요?

박: 하나씩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가장 궁금했던 것중의 하나가 제도권에 반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대학이 왜 기성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있는가였습니다. 학교에 다닐때는 데모도 하고 사회에 대해 각종 비판적인 의견을 쏟아내던 학생들이 졸업후에 그들이 반감을 갖던 기업에 취직해 너무도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이나 그런 학생들을 기꺼이 채용하고 우대하는 기업의 태도가 뭔가 이상했었지요. 근데 이것의 일면을 살펴보니 진보적이라는 겉모습과는 달리 서열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대학의 현실이 있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먼저 교수와 학생의 관계부터가 전근대적이었습니다. 유럽에서는 교수와 학생은 대학에서 서로 같이 공부하는 동등한 존재입니다.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의견을 교환하죠. 그러면서 많은 학문의 발전을 가져왔는데요. 한국의 대학은 그렇지가 않더라구요. 마치 교수와 학생은 중세 유럽의 도제제도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구요, 학생들은 취업에 필요한 학점이라는 족쇄로 인해 교수님의 눈밖에 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교수들은 그 점을 십분 활용하는 듯 했구요. 이러니 대학을 졸업해도 학생들은 쉽게 권위에 쉽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또한, 연령, 학번, 서열과 선배에 대한 복속을 주요 원칙으로 삼는 학생들간의 관계도 이런 전근대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선배를 깍듯이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 거의 당연하다는 듯 비춰지더군요. 특히 진보적이라 하는 운동권에서도 이런 현실이 팽배해 있으니 졸업 후 족벌체제에 복종하는 것은 당연지사이겠지요. 진보적 지향을 하나의 지적 전통으로 갖고 있는 한국의 대학은 동시에 역설적으로 청년들에게 규율과 복속을 가르치는 사회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여: 그러고 보니, 대학에 다니면서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결국 졸업후 기성사회에 침잠해버리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들이었군요. 요즘들어 조금 나아진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사라지지는 않고 있는데 이런 악습을 떨쳐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박: 그렇습니다. 대학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진리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다 동등한 사람들입니다. 먼저 들어온 사람, 더 많이 공부한 사람이 위에 서야한다는 건 학문탐구의 원리에 어긋나는 부분이며 사회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빨리 이런 부분들을 고쳐야 겠지요.

두번째로는 대학에서의 '커닝'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최근 수능시험 부정행위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었지만 대학에서의 '커닝' 도 만만치 않더군요. 한국 대학에 처음 와서 강의실에 놓여진 책상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책상에는 온통 각종 지식들이 적혀있더라구요. 또한 대학 내부에서도 이 중대한 문제를 별거 아닌, 하나의 '애교' 정도로 보는 것이 황당하기도 했구요.

이 '커닝' 이라는 것이 주는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이런 부정행위를 통해서 대학생들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 속임수를 써도 좋다는 생각, 공부의 내용보다는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생각을 은근히 갖게 되는데요. 이것이 사회에 나와서도 계속 이어지니까 각종 부정부패행위가 만연하고, 그에 대해 별다른 수치심이나 죄의식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죠. 부정을 저질러 구속되는 국회의원들 보십시요, 그들이 언제 진정한 반성의 마음으로 그걸 받아들였습니까? 그들은 오히려 잘못 걸렸다는 식으로 나오잖아요. 다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일어나는 일이죠.

여: 사실, 학점이라는 것이 워낙 학생들을 얽어매는데다가 대학이 취업을 위한 하나의 관문처럼 변해 버렸기에 부정행위가 생길 수밖에 없죠. 사소한 것에서부터 부정을 저지르는게 습관이 되니 결국 사회에서도 큰 부정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 부정행위를 하지 말자는 캠페인이 시험때마다 행해지고 있는데, 이를 많은 학생들이 심각하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네요.

박: 네, 정말 '커닝' 가볍게 보고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조교의 문제를 이야기 해볼까 하는데요. 조교들을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조교가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 교수의 하인과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교수 연구실 정리나 각종 사적 심부름, 심지어 논문 및 연구자료의 대필과 같은 일까지 장난이 아니더군요. 그런데 조교들은 그런 부분에 대해 별다른 느낌이 없더라구요. 그건 학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쌍무적 거래와 같다는 것이지요. 교수에게 그렇게 무료봉사 하면 언젠가 나중에 나에게 돌아올 것이고, 나도 교수가 되어 그렇게 밑에 있는 사람들을 부리면 된다는 생각, 과연 진보를 추구하는 한국 대학사회가 가져야 할 자세인지 궁금합니다. 모두들 이런 점을 잘 인식하여 한번 이런 악습을 고치려 나서봤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