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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22 군시절 추억... 군단장님 오시던 날 11


(출처: 연합뉴스)


2004년 12월 9일 네이버 블로그에 남겼던 글을 옮겨온다

9시 수업인데 7시 10분에 일어나는 바람에...
(자동으로 5시에 일어나니 늦게 일어나면 학교 안가는줄 알고 안깨우는 우리 엄니... ㅡ.ㅡ)
부랴부랴 학교 가려고 신발을 신는데 뉴스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자이툰 부대를 갔다는 뉴스가 나왔다.
대통령이 먼 이라크에 가서 고생하는 군인들을 위문방문하는건 절대 나쁜건 아니다.
게다가 목숨이 위태로울지도 모르는 이라크에 그렇게 갔다는건....
파병의 정당성을 떠나 그로서는 상당히 용기있는 결단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사실 이런 높은 사람이 부대에 온다는게 병사들로서는 별로 달갑지가 않다.
높은 사람은 바쁘기 때문에 사실 일반적인 군부대에 와도 오래 머무르지는 않는다.
그 몇분 높은 사람이 머무는 것 때문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 고달프기 때문이다.
대청소를 하지 않나, 생전 안하던 생쇼를 연습하지 않나....
군기들어보이게 한다고 어색한 오버를 강요하지 않나.... 그리고 당일날의 긴장감 등등....
이런 고달픔이 높으신 분들의 부대방문 뒤에 숨겨져 있는게 사실이다.
그래서 사단장이나 군단장, 심지어 연대장도 좀 우리 부대에 안왔으면 하는 생각 다들 했을 것이다.

난 아시다시피 해안중대에 몸을 담고 있었는데....
작년 추석을 며칠 앞둔 (한 열흘 정도) 어느날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우리 중대로 하달되었다.
우리는 당시 주문진에 머물고 있었는데... (여기가 우리 사단 경계구역 중 최북단임)
추석을 맞아 군단장이 우리 중대 담당  X소초를 위문방문한다는 것이었다.
사단장까지는 몇번 맞아 봤지만 군단장은 난생 처음이었고,
당시 동해안 지역을 담당하는 O군단의 군단장 방모 중장은....
약간의 또라이 기질을 겸비했다는, 좀 까탈스러운 사람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었다.

군단장이 와봤자 도움되는건 하나도 없다.
추석이라고 해서 모처럼 좀 낮에 쉬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지 않는가!
게다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군단장을 맞이하기 전까지의 그 엄청난 준비과정....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역시나 당시의 중대장은 그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오버와 아부의 달인 김$$ 대위!!!
군단장이 온다는 소식에 김$$ 대위는 흥분했다.
추석을 넉넉히 앞두고 김$$ 대위는 군단장이 올 X소초를 겉포장하기 시작했다.
X소초에 한번 갔다오더니 엄청난 작업거리를 행정병들과 소초원에게 하달했다.

그 작업거리중 기억나는거 몇가지를 살펴보면....
내무실 장판 바꾸기, 게시물 바꾸기(이게 장난아니다. 필요도 없는거 잔뜩 만들어 걸어놓는...)
대청소에다 무슨 상황판 작업... 농구장 라인긋기, 취사장 환경개선 등등....
군단장이 오면 좀 보여야 할것도 있긴 했지만 오버다, 쓸데없다고 생각되는게 많았다.

난 작전병인 탓에 소초 상황판을 바꾸는 재수없는 일을 맡았다.
시내에 가면 만원도 안되는 가격으로 대형출력을 할 수 있는 가게가 있어
A4 사이즈로 작업을 하고 거기 가서 뽑으면 좋을텐데 대한민국 육군의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일일히 상황판에 들어가는 각종 표와 도형을 다 자로 재서 조각조각 출력을 하고
그걸 다시 가위랑 칼로 오려서 유치원생 공작 하듯이 다 붙이고...
지도에다 각종 도식까지 하면서 며칠 고생을 해서 상황판 하나를 갈아 엎었다.

난 다행히 저거 하나로 끝났지만 상대적으로 나에 비해 게시물이 많은 인사병과 보급병은
엄청난 게시물 제작의 압박에 시달리며 우리는 추석이 다가오는 것도 잊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여하튼 행정병들과 행정보급관, 소초장, 부소초장, 소초원들이 조뺑이를 열흘 넘게 친 보람이 있어
군단장이 방문하는 X소초는 완전히 별천지로 바뀌었다. 놀라웠다.
그렇게 군단장이 방문할 추석 당일은 다가오고 있었다.

결전의 추석날.... 오후 즈음 해서 군단장이 방문할 것이라고 해서 다들 긴장하고 있었다.
아부쟁이 김$$ 대위는 몇시간전에 X소초에 가서 대기중이었고....
예정시간이 다가오자 연대장과 대대장도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X소초로부터 연락이 왔다. 군단장 방 모 중장 등장!!!!

아~~ 드디어 왔구나. 내가 있던 중대본부랑은 떨어져 있어 얼굴은 볼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긴장이 됨은 어쩔 수 없었다. 뭘 하고 있을지 참 궁금했지만 소초에 전화를 할수도 없었고...
그렇게 한 10여분이 지났을까 소초로부터 연락이 왔다. 전화를 내가 받았다.
 
"야, 군단장님 가셨다."
"그렇습니까? 근데 군단장님 오셔서 뭐하셨습니까?"
"연대장님, 대대장님, 중대장이랑 얘기만 하고 가셨다."
"막사 안에는 들어오셨습니까?"
"아니 안들어오고 밖에서 바닷가 보고 얘기만 했는데?"

...

졸라 허탈했다.
오만 갖은 발광을 하며 거의 리모델링을 해놓은 막사에는 들어와 보지도 않고....
밖에서 바닷가만 보고 그냥 가다니.... ㅡ.ㅡ
이럴라면 뭐하러 그런 쇼를 했단 말인가~~~

이래서 군단장, 군사령관 그 외 별 다신 분들의 방문이 달갑지 않다.
갑자기 노 대통령이 자이툰 부대에 갔다는 얘기를 들으니...
옛날 생각이 나면서 거기 있는 부대원들은 갑작스런 방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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