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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9 [북리뷰] 박노자 - 당신들의 대한민국 (2) 16

2004년 11월 19일 from. 네이버 블로그

여군동 기자, 책으로 박노자를 만나다

박노자 - 당신들의 대한민국 (2) 사대주의와 멸시가 공존하는 사회

인터뷰: 네이년 뉴스 여군동 기자(이하 여), 박노자 교수(이하 박)


여: 오늘 두번째 시간이 되겠습니다.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해 주시겠습니까?

박: 예, 오늘은 사대주의와 멸시가 공존하는 한국사회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주실지 사뭇 궁금하군요.

박: 그냥 저의 경험이나 공부를 하면서 느꼈던 부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 예정입니다.

여: 그럼 첫번째로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시겠습니까?

박: 첫번째로 해 드릴 이야기는 친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에 와서 느낀 것이 있는데, 친구관계가 참으로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통사회에서는 친구사이가 서로에게 본받을 것을 본받아 자신의 인격을 도야하는 방편 중 하나였지요. 그래서 친구는 스승이면서 동시에 제자의 역할을 했고, 친교는 교육의 일종으로 기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친구라는 단어의 뜻도 자신과 멀든 가깝든 자신과 같은 단체에 소속된 사람을 통칭하는 의미정도로 바뀌어 버렸고, 친교의 기능도 도덕적인 교감이 아닌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기브 앤 테이크만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는 것이지요.

여: 진정한 친구관계, 흔히 말하는 그런 우정이 아니라 계산이 밑바탕에 깔린채 피상적으로 서로를 만나는 관계를 의미하는 거군요.

박: 그렇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 주고, 그 댓가로 무엇을 받아야 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토론하며 그 접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닌, 천편일률적인 물질문화 속에서 우왕좌왕 하는 모습들.... 과거 전통사회나 지식인 계층의 발전을 가져왔던 그런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지요. 더이상 친교 기능이 이렇게 변질되고 정체되어 있다면 사회 구성원들간의 유대관계는 물론, 사회의 발전에도 많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여: 다음으로는 무슨 얘기를 해 주시겠습니까?

박: 두번째로는 영어공용화론으로 대표되는 한국사회의 잘못된 영어열풍에 대해 꼬집고자 합니다. 지금은 그 얘기가 없지만 가끔씩 영어를 공용어로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몇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지금이야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의 힘이 크기 때문에 영어가 사실상의 세계공용어로 자리잡고 있지만, 추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특히 엄청난 인구와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인해 세계의 대국으로 거듭나려 하는 중국의 존재를 고려했을때, 주도권이 영어에서 중국어로 바뀔수도 있고, 그 외의 다른 언어가 영어의 자리를 대신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영어공용화론은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은 근시안적인 주장이지요.

또한 모든 사람들이 다 영어를 유창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평생 살면서 영어가 그다지 필요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까지 모두 다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낭비입니다. 불필요한 인력에게까지 영어를 교육하는 예산으로 다른 것을 하는게 더 나라의 장래를 위해 좋다고 생각됩니다.

세번째로 영어공용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유럽의 비영어권 국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뛰어난 영어실력을 들먹이는데요, 이것도 앞뒤가 안맞습니다. 그 사람들이 악착같이 영어를 배워서 한국보다 높은 경제적 수준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사회가 발전해 경제적 수준이 높아지고 여가문화가 발달하면서 외국어 학습수준이 심화되어 영어를 잘 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영어실력이 국가의 발전동력이라 꼬집어 말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어공용화론은 장차 통일이 되면 우리와 한솥밥을 먹게될 북한주민에게 소외감이나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고, 한국어라는 울타리 안에 속해있는 해외동포들의 현지 동화를 촉진시켜 해외 한인 커뮤니티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영어교육을 받을 수 있는 부유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간의 갈등이 심해지겠구요.

여: 따지고 보니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세번째로는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시겠습니까?

박: 세번째로는 한국사회에서 요즘 많이 볼 수 있는 한국적 오리엔탈리즘을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원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것은 서구 사회에서 발현된 것으로서 비서구 지역의 주민과 문화의 가치를 부정하고 그들을 이질시, 타자화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리엔탈리즘은 비서구인들에게 그들이 타율성이나 소극성에 젖어있고 자기를 구제할 능력이 부족하므로 우리에 의해 개화되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펼쳐 그들 나름대로의 고유성을 부정하지요.

그런데 이런 오리엔탈리즘의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는 한국에서 이것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바로 중국이나 구 소련지역에 있는 한인동포에 대한 태도로 말이죠. 보수언론들에 의해 연변 조선족이나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은 못살고 불쌍한 존재로 인식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힘이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을 폅니다. 해외동포들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나름대로 자신들의 가치를 지켜왔는데 이것을 완전히 부정하고 어찌보면 낯선 고국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그들을 무시한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겠지요. 실제로 고국 사람들을 많이 접하거나 이곳에 와서 생활을 하다가 오히려 고국에 대한 반감과 실망만 잔뜩 가지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좀더 그들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진정한 모습에 주목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그런 점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냥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다 불쌍하다는 식의 단순한 사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군요.

여: 옳은 말씀입니다. 계속해 주시지요.

박: 마지막으로는 북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얘기해보겠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비판할때 그들이 김일성이나 김정일과 같은 우상을 숭배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곳의 우상화는 심각한 상황이긴 합니다. 요즘은 좀 그런게 줄어드는 징후가 나타난다고는 하지만.... 근데 북한만이 우상화 사회라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아닙니다. 한국사회도 북한보다 심하지는 않지만 곳곳에서 그런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재벌기업, 보수정당, 사립학교를 보십시오. 그들의 조직구조나 운영방식은 전근대적이고 수직적입니다. 북한과 그 본질적인 측면은 같습니다. 또한 북한의 권력세습체제는 비판하면서도 재벌의 세습체제는 그냥 어물쩍 넘어가는 현실도 이런 우상화를 은연중에 우리가 받아들이고 묵인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앞의 해외동포 편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단순히 경제적인 수준만 가지고 북한을 멸시하고 낮추어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 역시 우려할 만한 것입니다. 지금이야 북한이 경제적으로 파탄상태이기 때문에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최소 어느정도 김일성 체제가 안정되었던 1980년대를 본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기 힘든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나, 취업이나 학점으로 인해 제대로 대학에서 공부조차 하기 힘든 남한과는 다른 '공부를 위한 공부' 에 빠져든 학생의 모습.... 상대적인 행복감은 아마 남쪽보다 높으면 높았지 결코 낮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도 나름대로 많은 교육과 연구를 통해 사회 여러 부문에서 꽤 발전해 있어 통일 이후나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그들의 역량을 십분 활용할 기회가 정말 많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우리가 구해주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동반자로서 그들을 알려고 노력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이라던가 화해협력과 같은 문제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여: 정말 사대주의와 멸시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 이렇게 뿌리깊게 박혀있는지 몰랐네요. 다시한번 생각을 다듬어 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영어공용화론 같은 문제는 오늘날에도 참으로 새겨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놈의 오륀지 열풍... 지금이야 사라졌지만 언젠가는 또다시 나타나지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