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해냄, 1998년 12월 15일 초판 1쇄, 2002년 11월 20일 개정판 1쇄, 2008년 11월 30일 개정판 48쇄)

연초에 사서 몇주만에 본 책인데 이제서야 리뷰를 올려본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책을 보기로 하고 그동안 많이 접하지 못했던 소설책을 좀 봐야지라는 생각으로 인터넷 서점을 들어갔는데 막상 생각나는 책이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 서점이 추천하는 책을 하나 골라보자 하고 찾아보니 이 책이 있었다. 별 생각 없이 고른 책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참 재밌게 본 책이다. 역시 기대가 작으면 기쁨은 큰 법... ㅎㅎㅎ

1. 저자 주제 사마라구

1922년 포르투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마라구는 1947년 '죄악의 땅' 을 발표하며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후 19년간 단 한편의 소설도 쓰지 않고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968년 시집 '가능한 시' 를 펴낸 후에야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마라구 문학의 전성기를 연 작품은 1982년작 '수도원의 비망록' 으로, 그는 이 작품으로 유럽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으며 1998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함께 20세기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사마라구는 환상적 리얼리즘 안에서도 개인과 역사,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며 우화적 비유와 신랄한 풍자, 경계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 왔다. 여든 아홉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왕성한 그의 창작 활동은 세계의 수많은 작가를 고무하고 독자를 매료시키며 작가정신의 살아 있는 표본으로 불리고 있다. (책에 있는 저자 설명 인용)

다소 나에게는 낯선 포르투갈식의 이름을 가진 이 작가는 유럽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라고 한다.

2. 소설의 주요 내용

평온하게 하루하루를 지내던 어느 도시의 사람들에게 예상치 못한 재앙이 닥쳐온다. 한 남자가 눈이 멀기 시작하더니 그와 접촉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눈이 멀어간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정부는 눈먼 사람들을 찾아내 격리 수용하기 시작한다. 결국 격리 수용된 자는 눈뜬자들에게 버려진채 교외의 한 병원에서 자기들만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 이 속에서 딱 한명 눈이 멀지 않은 여자가 있었다. 그의 눈으로 눈먼 자들의 삶이 모습을 드러낸다.

눈이 먼 사람들에게 정상적인 삶을 요구하기란 힘들다. 짐승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는 목불인견의 상황이 계속 펼쳐진다. 폭력, 강간, 약탈, 무질서, 불신, 살인이 난무하는 그 속에서 물고 물리며 혼란스러움을 연출한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이기에 자신의 몸이 불편한 속에서도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그 속에서 규칙을 마련해 질서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굶어죽던지 눈이 보이지 않아 어디에서 변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은 차츰 삶의 지혜를 얻고, 눈뜨며 살았던 시절의 과오를 반성한다.

하지만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던 그때, 한사람 한사람씩 다시 눈을 뜨기 시작한다. 다시 빛을 보게 된 그들은 기쁨에 환호를 지르며 자신 앞에 놓인 도시를 맞게 된다.

3. 나의 감상

이 소설은 현재의 인간 사회를 눈먼 자들만이 득실대는 혼란스런 도시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눈먼 사람들이 격리된 공간과 이후 격리된 공간을 탈출해 도시 속에서 벌이는 일련의 모습들은 인간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약탈, 폭력, 살인, 강간, 불신, 무질서와 같은 부정적인 측면과 사랑, 공조, 박애, 상부상조, 진실의 새로운 발견과 같은 긍정적인 측면 모두를 말이다.

이 작품의 백미는 도덕과 규율, 인간성이 사라지고 있는 현재 인간 사회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는 전제를 통해 멋지게 대비시켰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눈이 멀게 됨으로써 사람들은 일단 판단의 기준을 하나 잃었으며,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용해 좀더 본능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마라구는 인간 사회의 단면을 '눈먼 자들이 돌아다니는 도시' 를 통해 정확하게 꿰뚫고 있으며 이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며 우리에게 경고와 희망의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고 있다.

소설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모든 표면적 상황과 사람들의 심리를 그려낸다. 약 400여 페이지의 소설은 그 흔한 대화문 하나 없이 간접적 대화와 서술로 문단 구분 없이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보다가 책을 덮어야 할 상황이 되면 어디서 덮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하나의 큰 스토리는 하나의 큰 문단으로 몇십 페이지씩 흐르고 또 흐른다.

이 소설이 영화화 됐다고 하는데, 소설을 먼저 보면 영화는 절대 못볼 것 같다. 씻지도 못해 지저분해진 몸에 폭력과 강간 장면, 무분별하게 여기저기 난사된 배설물 등... 만일 영화가 그런 것들을 모두 잘 표현했다면 눈뜨고 보긴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야말로 눈먼자들의 세상이기에 가능했던 그 상황... 그래서 아직도 난 영화를 볼 생각을 못하고 있는듯 하다.

4. 유사 작품

유사한 작품으로는 이광수의 '무명(無明)' 을 꼽고 싶다.

이 작품은 감옥에 갇힌 죄수들의 생활속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진행된다.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억제하지 못하고 죄를 저질러 감옥에 들어온 죄수들은 여전히 욕구를 억제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 감옥 속에서 의식주에 얽힌 여러가지 사건과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다 화를 입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며 작가는 무소유와 진실함, 성실함만이 아름다운 삶을 위한 진정한 길임을 교훈적으로 전달하고 있다.